최근 스팀에서는 대규모 자본을 투입한 게임이 아니어도 친구들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소규모 멀티플레이 게임이 크게 흥행하고 있다.
대표적인 게임이 R.E.P.O., PEAK, 멧챠 카멜레온이다. 조금 오래된 작품까지 범위를 넓히면 Pummel Party 역시 현재 파티게임의 흥행 공식을 일찍 보여준 사례다.
이 게임들은 공포, 등반, 숨바꼭질, 미니게임처럼 장르가 서로 다르다. 그런데 플레이 구조를 살펴보면 놀라울 정도로 비슷한 성공 공식을 가지고 있다.
핵심은 단순히 ‘친구와 할 수 있는 게임’이 아니다.
친구들과 노는 과정이 하나의 이야기가 되고, 실수와 실패가 방송이나 숏폼 콘텐츠로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게임이 잘되고 있다.
요즘 스팀에서 협동게임이 잘되는 이유
최근 유행하는 협동게임을 업계와 이용자들은 종종 ‘프렌드슬롭(Friendslop)’이라고 부른다.
다소 부정적으로 들릴 수 있는 표현이지만, 실제 흥행작의 특징은 단순히 완성도가 낮다는 데 있지 않다. 화려한 그래픽이나 방대한 스토리보다 친구 사이에서 발생하는 웃음, 갈등, 협동, 배신을 게임의 중심 콘텐츠로 사용한다는 의미에 가깝다.
이런 게임은 혼자 플레이했을 때보다 친구와 함께했을 때 가치가 급격하게 커진다. 한 명이 게임을 발견하면 함께할 친구들에게 구매를 권하기 때문에 한 번의 입소문이 여러 장의 판매로 연결될 가능성도 높다.
- 멧챠 카멜레온이 잘되는 이유
멧챠 카멜레온은 자신의 몸을 직접 칠한 뒤 배경과 비슷하게 위장하는 숨바꼭질 게임이다.
기존 숨바꼭질 게임에서는 좋은 위치를 찾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멧챠 카멜레온은 여기에 ‘자기 몸을 직접 칠한다’는 행동을 추가했다.
이 한 가지 차이가 게임의 정체성을 만든다.
그림을 잘 그린 사람은 감탄을 만들고, 그림을 못 그린 사람은 웃음을 만든다. 어디에 숨을지, 어떤 자세를 취할지, 어떻게 칠할지를 플레이어가 직접 결정하기 때문에 개발자가 모든 재미있는 상황을 만들어줄 필요도 없다.
플레이어가 직접 웃긴 장면을 생산하는 구조다.
또한 게임을 처음 보는 사람도 화면만 보면 규칙을 이해할 수 있다. 이상하게 칠해진 캐릭터가 배경에 숨어 있고, 술래가 바로 앞을 지나가는 장면만으로도 긴장과 웃음이 전달된다.
친구와의 플레이뿐 아니라 공개방과 시청자 참여형 방송에도 적합하다는 점 역시 확산에 유리하다.
결국 멧챠 카멜레온의 강점은 숨바꼭질 자체가 아니다. 플레이어의 창작 활동이 승패와 웃음으로 직접 연결된다는 점이다.
- Pummel Party가 오랫동안 살아남는 이유
Pummel Party는 2018년에 출시된 게임이다. 최근 등장한 신작은 아니지만, 지금도 통하는 파티게임의 구조를 일찍 완성한 작품이다.
게임의 기본 형태는 보드게임과 미니게임의 결합이다. 최대 8명의 플레이어가 이동하고, 아이템을 사용하고, 서로를 방해하면서 최종 승자를 결정한다.
Pummel Party에서 중요한 것은 공정한 경쟁보다 감정 변화다.
친구를 공격하거나 아이템을 빼앗을 수 있고, 한 번의 변수로 순위가 뒤집히기도 한다. 실력이 부족한 플레이어도 아이템과 운을 통해 역전할 수 있기 때문에 숙련도 차이가 있는 친구들과 함께하기 좋다.
여기에 다양한 미니게임과 Steam Workshop, 레벨 에디터가 장기적인 콘텐츠 부족을 보완한다.
이 게임에서는 친구 관계도 하나의 콘텐츠로 작동한다. 게임이 만든 규칙 위에 복수, 동맹, 배신, 억울함 같은 감정이 쌓이면서 매번 다른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 R.E.P.O.가 폭발적으로 흥행한 이유
R.E.P.O.는 물리 기반의 협동 공포게임이다. 플레이어들은 위험한 장소에서 귀중품을 찾아 안전하게 운반하고, 목표 금액을 달성한 뒤 탈출해야 한다.
표면적으로는 Lethal Company와 비슷한 협동 공포게임처럼 보인다. 하지만 R.E.P.O.는 귀중품을 물리적으로 들어서 옮겨야 한다는 강력한 차별점을 가지고 있다.
피아노처럼 무거운 물건은 여러 명이 함께 들어야 하고, 도자기처럼 깨지기 쉬운 물건은 조심스럽게 운반해야 한다.
여기서 협동과 사고가 동시에 발생한다.
친구가 물건을 들어주는 것은 도움이 되지만, 방향을 잘못 잡거나 갑자기 놓아버리면 귀중품이 파손된다. 괴물을 피하다가 물건을 떨어뜨릴 수도 있고, 욕심을 부려 더 비싼 물건을 챙기려다 팀 전체가 위험해질 수도 있다.
친구를 도와주는 행동과 친구를 망하게 만드는 행동이 같은 시스템 안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근접 음성 채팅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멀리서 들리는 친구의 비명, 갑자기 끊기는 목소리, 괴물 앞에서 조용히 대화해야 하는 상황이 모두 게임플레이가 된다.
R.E.P.O.의 공포는 플레이어를 긴장시키고, 물리 시스템은 그 긴장을 코미디로 바꾼다. 이 때문에 게임을 직접 플레이하는 사람뿐 아니라 방송을 시청하는 사람도 쉽게 재미를 느낄 수 있다.
- PEAK가 성공한 이유
PEAK의 목표는 매우 단순하다.
친구들과 함께 산 정상에 올라가면 된다.
게임을 처음 보는 사람도 목표를 바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 플레이에서는 부상, 스태미나, 음식, 로프, 지형 같은 요소가 결합되면서 다양한 상황이 발생한다.
먼저 올라간 플레이어가 손을 내밀어 친구를 끌어올릴 수 있고, 뒤에 오는 사람을 위해 로프나 등반 도구를 설치할 수도 있다. 음식과 장비가 부족하면 누구에게 자원을 줄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한 사람의 실수가 개인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도 중요하다.
부상을 입으면 사용할 수 있는 스태미나가 감소하고, 이동이 어려워진다. 결국 팀은 다친 친구를 버릴지, 위험을 감수하고 함께 갈지 선택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구조, 희생, 민폐, 배신 같은 감정적인 장면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진다.
또한 PEAK의 산은 주기적으로 변경된다. 같은 날에는 동일한 산에 여러 번 도전하면서 경로를 학습할 수 있고, 다음 날에는 새로운 구조가 등장해 재도전할 이유가 생긴다.
정상이라는 명확한 최종 목표가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한 판의 플레이가 출발, 위기, 희생, 성공 또는 실패로 이어지면서 자연스럽게 하나의 이야기로 완성된다.
네 게임에서 발견되는 공통 흥행 공식
장르는 다르지만 이 게임들이 잘되는 이유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한 문장으로 설명할 수 있다.
“몸을 칠해서 배경에 숨는다.”
“깨지기 쉬운 물건을 들고 탈출한다.”
“친구들과 서로 끌어주며 산을 오른다.”
게임의 핵심을 한 문장으로 설명할 수 있으면 방송 제목, 유튜브 썸네일, 숏폼 영상으로 전달하기 쉽다.
둘째, 조작보다 상황이 어렵다.
기본 조작은 복잡하지 않다. 하지만 친구, 물리 효과, 지형, 괴물, 제한 시간 때문에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계속 발생한다.
셋째, 협동 속에 민폐 가능성이 존재한다.
일부러 배신자 역할을 넣지 않아도 친구의 실수와 욕심 때문에 갈등이 생긴다. 누가 악역을 맡지 않아도 게임이 자연스럽게 배신과 복수를 만들어낸다.
넷째, 실패가 재미를 끝내지 않는다.
일반적인 게임에서는 실패가 보상을 잃는 부정적인 경험으로 끝나기 쉽다. 하지만 이 게임들에서는 가장 큰 실패가 가장 재미있는 장면이 된다.
게임에서는 졌지만 친구들과 오랫동안 이야기할 장면을 얻는 것이다.
다섯째, 보는 사람도 즉시 이해할 수 있다.
복잡한 스탯이나 세계관을 몰라도 누가 위험한지, 누가 사고를 쳤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바로 알 수 있다.
직접 플레이하지 않는 시청자까지 재미를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인터넷 방송과 숏폼을 통한 확산에 유리하다.
그렇다면 소규모 개발자는 무엇을 노려야 할까?
중요한 것은 R.E.P.O.나 PEAK의 외형을 그대로 따라 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 협동 공포게임과 등반 게임의 모방작이 빠르게 늘고 있다. 장르만 따라가면 원작과 비교될 가능성이 높고, 온라인 멀티플레이 개발 비용까지 부담해야 한다.
따라서 새로운 장르보다 ‘새로운 행동 하나’를 먼저 찾아야 한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칠한다.
붙잡는다.
포장한다.
쌓는다.
연결한다.
밀어낸다.
몰래 바꾼다.
게임의 시작은 “협동 공포게임을 만들자”가 아니라 “친구들과 무엇을 하는 게임을 만들 것인가”가 되어야 한다.
플레이어끼리 직접 영향을 주게 만들어야 한다
여러 명이 같은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는 좋은 협동게임이 되기 어렵다.
한 플레이어의 행동이 다른 플레이어의 상황을 바꿔야 한다. 서로 붙잡고, 밀고, 치료하고, 물건을 옮기고, 길을 만들어주는 구조가 필요하다.
가장 재미있는 것은 선의로 한 행동도 실수하면 사고로 이어지는 구조다.
친구를 끌어올리려다가 함께 떨어지거나, 물건을 받아주려다가 파손시키고, 괴물에게서 구해주려다가 위치를 들키는 식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사고는 개발자가 대사를 작성하지 않아도 플레이어들만의 이야기가 된다.
10초짜리 영상이 나오는지 먼저 확인해야 한다
최근 협동게임을 기획할 때는 장시간 플레이보다 먼저 10초짜리 장면을 검증할 필요가 있다.
처음 보는 사람이 3초 안에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가?
친구가 비명을 지르거나 웃을 순간이 있는가?
성공보다 실패 장면을 더 공유하고 싶은가?
매번 다른 이야기가 발생하는가?
게임 이름이 궁금해질 정도로 독특한 행동이 보이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대부분 ‘아니오’라면 방송과 숏폼을 통한 자연스러운 확산을 기대하기 어렵다.
콘텐츠의 양보다 시스템의 조합이 중요하다
소규모 개발자가 수십 개의 맵, 몬스터, 퀘스트를 제작하는 것은 위험하다.
대신 적은 수의 시스템이 서로 충돌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예를 들어 깨지는 물건, 좁은 문, 움직이는 바닥, 제한 시간이라는 네 가지 요소만 있어도 다양한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
플레이어의 행동과 물리 시스템이 콘텐츠를 만들어주면 개발자가 모든 상황을 직접 제작하지 않아도 된다.
탈락한 플레이어의 대기 시간도 줄여야 한다
파티게임에서 초반에 탈락한 뒤 다른 사람의 플레이를 오랫동안 구경해야 하는 구조는 치명적이다.
죽거나 탈락한 플레이어에게도 제한적인 역할을 주는 것이 좋다.
유령 상태로 동료를 도와주거나, 환경 일부를 조작하거나, 함정을 작동시키거나, 살아 있는 플레이어에게 힌트를 전달하게 만들 수 있다.
승리 가능성은 사라졌더라도 친구들과 장난칠 가능성은 남겨둬야 한다.
지금 노려볼 만한 게임 방향
현재 가장 유망하다고 생각하는 방향은 ‘작업형 협동게임’ 또는 ‘창작형 파티게임’이다.
공포와 등반 자체를 복제하기보다 플레이어들이 함께 무언가를 만들고, 옮기고, 꾸미는 과정에서 사고가 발생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기획이 가능하다.
3~6명의 플레이어가 폐점 직전의 수상한 가게를 정리한다.
누군가는 물건을 포장하고, 누군가는 창고로 운반하고, 누군가는 주문서를 확인한다. 물건마다 무게와 크기, 깨지는 방식, 이상한 특성이 다르다.
시간이 부족해지면 정상적인 업무가 점차 대형 사고로 변한다.
무거운 냉장고가 계단에서 굴러떨어지고, 잘못 포장한 물건이 움직이기 시작하고, 친구가 조작하는 지게차가 창고 전체를 무너뜨릴 수도 있다.
여기에 편의점, PC방, 찜질방, 물류창고, 이삿짐센터처럼 한국 개발자가 익숙하게 표현할 수 있는 공간을 사용하면 해외 협동게임과 시각적으로 차별화할 수 있다.
결론
R.E.P.O., PEAK, 멧챠 카멜레온이 보여주는 흥행 공식은 단순한 저가형 협동게임이 아니다.
핵심은 한 문장으로 설명되는 행동, 친구끼리 직접 영향을 주는 시스템, 웃긴 실패, 빠른 재도전, 영상만 봐도 이해되는 상황이다.
그래픽의 화려함은 어느 정도 부족해도 괜찮다. 하지만 멀티플레이 연결 안정성, 첫 10분의 재미, 친구 사이에서 사건이 발생하는 구조는 반드시 확보해야 한다.
결국 앞으로 노려야 하는 것은 특정 장르가 아니다.
플레이어들이 게임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게임 안에서 자신들만의 이야기를 만들게 하는 구조를 노려야 한다.
참고 자료
- 멧챠 카멜레온 Steam 페이지
https://store.steampowered.com/app/4704690/MECCA_CHAMELEON/ - Pummel Party Steam 페이지
https://store.steampowered.com/app/880940/Pummel_Party/ - R.E.P.O. Steam 페이지
https://store.steampowered.com/app/3241660/ - PEAK 공식 소개
https://landfall.se/pe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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